
책을 읽는다는 일은 오랫동안 나에게 사유의 포장지였다. 내 생각을 좀 더 세련되게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했고, 마치 내가 지식의 표면을 지배하는 듯한 우쭐함까지 허락했다. 그러나 그 포장은 결국 비닐과도 같았다. 쉽게 찢기고, 바람에 날려 흩어져 버렸다. 한때 내 안을 가득 채우는 듯했던 문장들도 시간이 지나면 흙 속에서 구멍 난 채 썩어가는 비닐처럼 다시 나타났다. 그 흔적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것이 언제의 감흥이었는지, 어떤 생각의 잔해였는지조차 떠올리지 못한 채 부끄러움뿐인 대면을 서둘러 묻어버렸다.
그것이야말로 쌓였다고 착각한 지식의 오만이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으며 이러한 생각이 더욱 또렷해졌다. 35년 동안 폐지 더미 속에서 책을 건져 읽고, 그 책들을 압축하여 작품처럼 꾸러미로 만들어내던 한탸. 그는 악취와 곰팡내 나는 지하 공장을 은유들로 아름답게 장식하며, 쥐떼와 검정 파리떼, 윙윙거리는 기계 소리마저 자신의 ‘시끄러운 고독’ 속에서 숭고한 의미로 승화시켰다. 공장은 그의 세계이자 텍스트였고, 책에서 만난 현자들과 성인은 그의 지적인 대화 상대였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삶이 너무도 처절하게 느껴졌다. 35년. 그 어둡고 눅눅한 공장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모습은, 아무리 아름다운 해석을 덧씌워도 결국 비극이었다. 그는 지식 속에서 위안을 찾았지만, 정작 스스로의 삶은 계속 압축기에 넣어버렸다. 끝내 자신의 존재마저 꾸러미로 만들어 사라졌다.
나는 그 이유가 바로 ‘책만 읽은 삶’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삶의 활력은 독서가 아니라 행동에서 오기 때문이다.
책은 의미를 선물하지만, 살아내는 힘은 결국 움직이는 몸에서 나온다.
읽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 삶은, 결국 한탸처럼 조용히 압축기에 밀려 들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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